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문단 편집) === 역사를 바꾼 렌도이로 === 축구에 미친 스페인에서 롤러 하키 구단보다 인기가 떨어졌던 무명 구단 데포르티보. 그러나 1988년 아우구스토 세사르 렌도이로가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말도 안되는 기적이 시작된다. 새 회장 렌도이로는 여느 다른 구단주들처럼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렌도이로는 아 코루냐 출신으로 약학을 전공한 후 약학 아카데미의 교수이자 시 의원에 불과했다. 쉽게 말해 슈가 대디가 아니었다. 그러나 렌도이로는 구단 경영인으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구단 경영에 있어 100년에 1번 나올까말까하는 천재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앞서 언급했던 롤러 하키 구단 HC Lieco의 공동 설립자이자 구단주를 지냈었고 스페인 리그와 컵, 유럽 대회 및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시켰다. 때마침 시 의회에서는 세금만 축내던 데포르티보의 구단주를 몰색하던 중이었고 렌도이로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낙점받았다. 렌도이로는 데포르티보가 당장 해체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기에 몇 번을 고사하다 주위의 계속된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한다. 렌도이로는 1988년 부임한 이후 데포르티보는 3년 만에 프리메라 리가로 끌어올렸다. 18년 만에 프리메라 리가로 복귀한 것이었다. 렌도이로 구단주는 "바르샤, 마드리드, 우리가 왔다!(¡Barça, Madrid, ya estamos aquí!)"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데포르티보를 프리메라 리가 우승팀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주위에선 당연히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치부했고 강등 걱정이나 하라며 비웃기 바빴다. 그러나 렌도이로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1992년 여름 그는 데포르티보의 역사를 바꾼 두 건의 영입을 성사시키니 바로 [[베베투]]와 [[마우로 실바]]였다. 당시 베베투와 마우로 실바는 이미 브라질 대표팀에 발탁되었을 정도로 남미에선 유명세를 떨치는 선수들이었다. 반면 데포르티보는 내세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무명 구단에 불과했다. 렌도이로는 베베투와 마우로 실바를 직접 만나기 위해 몸소 브라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갈리시아는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브라질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해 두 선수의 마음을 잡는데 성공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